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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이야기

와우정사(臥牛精舍)

by 한 뫼 2015. 6. 27.

 

 

대한불교열반종(大韓佛敎涅槃宗)

연화산와우정사(蓮華山臥牛精舍)

 

용인의 연화산(해발304m)주변에는 에버랜드(용인자연농원)와 용인리조트(스키장), 한국민속촌이 자리잡고 있는등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곳 용인에 있는 우리국민의 호국정신에 성지인 ‘와우정사(臥牛精舍)’는 우리 민족의 염원인 남북평화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실향민인 김해근(金海根) 삼장법사께서 창건한 사찰이며

현재 많은 외국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어 주지이신 해덕(海德)박사께서는 직접 친절히 경내를 안내해 주시고 있습니다.

 

 

대한불교열반종(大韓佛敎涅槃宗)

연화산 와우정사(蓮華山 臥牛精舍)

 

 

대한불교열반종(大韓佛敎涅槃宗)은 고구려시대(서기623~650년경)에 보덕성사(普德聖師)께서 창종(創宗)한 종단(宗團)이다.

신라시대에 고승(高僧)이신 원효대사(元曉大師), 의상대사(義湘大師), 경흥대사(景興大師), 대현대사(大賢大師)께서도 대한불교열반종에서 수학(修學)하신바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보덕성사(普德聖師)의 열반종(涅槃宗),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율종(律宗), 원효대사(元曉大師)의 법성종(法性宗),

의상대사(義湘大師)의 화엄종(華嚴宗),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법상종(法相宗) 등 5개의 종단이 있었다.

그후 9개의 산에서 선(禪)을 수행하여 이를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고 하고 고려시대에 대각국사(大覺國師)께서 천태종(天台宗)을 창종하고

보우대사(普愚大師)가 조계종(曹溪宗)을 창종하였으며 고려시대 말엽에는 12개의 종단이 있었다.

조선조의 개국(開國)으로 불교계는 열반종(涅槃宗), 조계종(曹溪宗), 총지종(總持宗), 천태소자종(天台疏字宗), 소승종(小乘宗), 화엄종(華嚴宗), 도문종(道門宗),

자은종(慈恩宗), 중도종(中道宗), 신인종(神印宗), 남산종(南山宗), 천태법사종(天台法事宗) 등 12개 종파(宗派)로 발전(發展)하여 오다가,

서기1407年 태종(太宗)의 배불정책(排佛政策)으로 승려(僧侶)의 환속강요(還俗强要), 사찰토지몰수(寺刹土地沒收), 사찰의 축소(縮小),

폐사(廢寺)를 자행(自行)하는 한편 12개의 종단을 열반종(涅槃宗), 중신종(中神宗), 화엄종(華嚴宗), 자은종(慈恩宗) 등 4개 교종(敎宗),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 총남종(總南宗) 3개 선종(禪宗)으로 축소, 7개종단으로 통폐합(統廢合)하여 탄압(彈壓)을 지속(持續)하였다.

그후 서기1424년 더욱 강화(强化)된 세종(世宗)의 배불정책(排佛政策)으로, 종단을 말살(抹殺)하여 교종 4개종 열반종[시흥종(始興宗], 화엄종, 자은종,

중신종과 선종 3개종 조계종, 천태종, 총남종을, 다시 종단의 이름이 없는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宗兩宗)이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우리나라는 종명이 없는 선교 양종으로서 이어져왔다.

1910년 일제(日帝)가 침략(侵略)하였으며 더욱 탄압을 받아서 종단이 없는 시대가 1945년 8?15광복후에도 계속이어지고 6.25전쟁이후 불교계의 분쟁(分爭)과

정화운동(淨化運動)으로서 1962년 2월 14일 통합종단(統合宗團)인 대한불교 조계종(曹溪宗)이 창종되였으며,

1970년에 한국불교 (태고종)太古宗과 그후 여러 종단의 창종으로 이어졌으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승에 증명(證明)으로 1970년 9월 1일에

해암해곡 삼장법사(海巖海谷三藏法師)님에 의하여 대한불교열반종(大韓佛敎涅槃宗)은 조선조이후 다시 중흥(中興)을 하였다.

(출처 : 와우정사)

 

 

 

 

 

 

 

 

 

 

 

 

 

 

 

 

 

 

 

 

 

 

 

 

 

 

 

황금의 종(통일의 종)  

세계최대의 금과동으서 조성한 범종으로서 88서울올림픽 개회식에 타종한 통일의종,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한 범종

 

 

 

 

 

미륵반가 사유상

세계최대의 청동으로 조성된 미륵반가사유상으로서 불교의 문화재임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화랑도들의 호국불교정신을 이여주고저 호국정신의 교육을 위하여 조성하였음

 

 

 

 

 

 

 

 

 

 

열반전(涅槃殿)

 

 

 

 

누워계신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전(涅槃殿)에 있는 열반상(涅槃像) 혹은 와불상(臥佛像)은, 인도네시아에서 보내 온 통나무로 된 향나무 한그루를 다듬어

붙임새도 없이 조각(彫刻)한 해탈(解脫)의 부처님입니다.
인도의 스님께서 우리 민족(民族)의 염원(念願)인 남북평화통일(南北平和統一)을 위(爲)하여 인도네시아에서 보내주신 향나무로서 높이 3m 길이 12m의

석가모니(釋迦牟尼) 누워계신 부처님은 열반(涅槃)을 상징(象徵)하며 열반(涅槃)은 번뇌(煩惱)의 불이 다 타고 꺼진 상태(狀態)로서의 부처님이다.

(영국(英國) 기네스북에 등록(登錄)되어 있음.)

 

 

 

 

 

 

 

팔상도는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②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毘藍降生相),
③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④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樹下降魔相),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苑轉法相),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雙林涅槃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사전)

 

 

 

①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인도 가피라국 숫도다니 왕은 왕자가 없어 큰 걱정을 하던중에 도솔천에서 흰코끼리가 내려오는 태몽을 마야부인께서 꾸셨다.

(탄생을 위하여 도솔천을 떠나 흰코끼리를 타고 북인도의 카필라 왕궁을 향하고 있는 모습.)

 

 

 

 

 

 

②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기원전 623년 4월 8일에 룸비니 동산에서 실달다 태자께서 탄생하시어서 "하늘과 땅 사이에 나홀로 존귀하다 모두고통이니 내마땅히 이를편안케 하리라"

말씀하시었다.

(마야(摩耶)부인이 산달을 맞아 친정으로 가던 도중 산기가 있어...
룸비니 동산으로 가서 부처를 낳는 모습이다. 부처는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출생하였다.)

 

 

 

 

③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사대문을 나가 처음으로 궁궐 밖의 세상 구경을 하시던 중에 사람들이 병들고 늙고 죽은 사람을 보시고 인생이 무상함을 깨달으시었다.

네번째 문을 나오시어서는 수행자가 편안한 얼굴로 수행하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편안하시었다.

(부처가 도성의 성문을 나가 노인과 병자, 죽어 실려 나가는 시체를 보고 북문에서 출가하는 사문을 만나 출가를 결심하는 그림이다.)

 

 

 

 

 

 

④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2월 8일 한밤중에 수행자가 되리라는 뜻을 품고 부귀영화와 왕자의 자리와 아내와 자식을 버리시고

왕궁을 넘어 차익만 데리고 떠나 설산으로 향하시었다. 이때의 나이가 29세이셨다.

 

 

 

 

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산에서 6년 동안 고행을 하시고 나서 수행은 거문과와 같이 너무 팽팽해도 줄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소리가 안 좋은 점으로서

중도에 있어야 소리가 아름다운 법과 같이 수행도 중도의 법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었다.

(6년 동안 갖은 고행을 겪으며 스승을 찾아다니다가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자기 안에 있음을 깨달아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⑥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서 마구니들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12월 8일 북두칠성을 보시고 해탈을 하시었다.

번뇌의 불은 꺼지고 고타마 심달타는 열반에 이르시어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이때가 35세이시다.

(선정에 들어가 갈등이 심하지만 수행이 자신과의 투쟁임을 깨닫고 용맹 정진하여 마침내 마군의 항복을 받고 대오각성의 경지에 드는 모습이다)

 

 

 

⑦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녹야원에서 최초로 인류 중생을 위하여 교진여 등 다섯비구에게 고.집.멸.도. 사체법을 위시하여 팔정도 그리고 십이연기의 진리를 설법하시고

이후 45년간 금강경, 능엄경, 법화경, 원각경, 화엄경등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다.

(대오각성한 석가모니가 그곳에서 500리쯤 떨어진 녹야원으로 가서 처음으로 5명의 수행자에게 설법하여 그들을 귀의시키는 모습이다)

 

 

 

 

 

⑧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12월 15일 80세에 석가모시 부처님께서는 인도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대반열반경"을 강론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진리에 귀의하고

자신을 등불로 삼고 수행 정진하라 하시고 열반에 드시었다.

 

 

 

 

 

약사 여래 부처님

1998년 4월 8일 봉안식을 봉행한 약사여래부처님은 화강암으로 조성한 약사여래부처님으로 인류중생의 고통과 질병을 치유하시는 부처님으로서

이 사바세계에서 고통받는 오늘의 우리에게 큰 복덕을 베풀어 주시길 위하여 나투신 부처님입니다.

 

 

 

 

 

 

 

500나한상

 

 

500나한상 파노라마

 

 

 

 

 

 

대각전(大覺殿)

 

 

 

 

 

 

 

 

석가모니 부처님 고행상 (한덩어리의 옥돌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상은 지금으로 부터 2500년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29세되는해 2월 8일 출가하사여

6년간 고행을 하시던중에 인도의 붓다가야에(마하보디사원)의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시다가 12월 8일

북두칠석을 보시고 깨달으셨습니다. 그러므로서 성불(星佛)이라고 합니다. 이때가 35세 이십니다.

(세계유일하게 사찰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불 고행상으로서 국보급의 불상임)

 

 

 

 

 

 

 

 

 

 

 

 

 

통일의 탑

 

‘통일의 탑’ 이 돌탑속에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의 큰스님이 불교성지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 가져온 돌은,

고사리 손 아기불자가 얹은 돌과 가슴을 맞대었고,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에서 가져온 돌은 이름없는 늙은 불자가 얹은 돌과 손을 맞잡았으며,

쿠시나가라 부처님 열반성지에서 가져온 성석은 전국의 불자들이 가족수데로 가져와 쌓은 돌들과 한데 엉겼고,

대한민국 국회 정각회 회원 불교성지 순례단 일행이 부처님 성지에서 가져온 성보와 한국방송공사 특파원이

민족의 영산 백두와 한라에서 가져와 얹은 돌들과 맞물려 높이 거룩하게 솟았으니 동서가 여기있고 고금이 여기 있으며

지상의 성스러운 기상이 모두 여기모여 있을 것이다.

 

 

 

 

 

 

승용차없이 떠나는 여행

마산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다녀온 와우정사

정사 입구에서 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서 대각전 앞에 도착하니 11시 45분이다.

2005년 6월 25일  10년후 다시 찾아 오리라 마음먹었던 곳.

10년 전과 많이 달라저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10년후 2025년 6월 25일 다시 가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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