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여행 이야기

관룡사(觀龍寺) 경남 창녕 화왕산

by 한 뫼 2014. 7. 27.

관룡사(觀龍寺)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는 관룡사
경남 창녕 동쪽에 높고 크며 숲이 빼어난 화왕산(火旺山)이 있다
화왕(火旺) 이라 한지가 오래 되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산 동쪽의 아름다운 곳에 관룡사(觀龍寺)라는 사찰이 있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화왕산 꼭대기에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이 있는데,
절을 창건할 때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겨 절의 이름을 관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불테 타 사라지고 오직 약사전만이 그 화를 면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영운’ 이라는 고승은 악사전에 영험한 기운이 있어 화를 피했다고 여겨
약사전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들보 끝의 나무가 겹쳐진 곳에서 영화5년기유(永和5年己酉) 라는
글자를 발견하였다.
이때부터 관룡사에서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설이 널리 퍼졌고,
관룡사는 많은 이들이 수행하고 기도하는 영험한 수행지가 되었다.

신라시대인 379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창건 후 원효대사가 이 관룡사에서 일천 대중에게 설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당시에는 신라의 8대 사찰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사세가 컸다고 한다.
그후 임진왜란 때 사찰이 전소해 중창이 이루어졌으며,
1700년대에 산사태를 겪어 다시 중창이 이루어졌다.
현재 관룡사는 그리 큰 사찰은 아니지만 관룡산 준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자리에 있어,
사찰의 호젓함을 느낄 수 있는 절이다.
역사가 오랜 사찰인 만큼 국보급 문화재도 많다.
보물 제146호인 관룡사 약사전, 보물 제212호인 관룡사 대웅전, 보물 제519호인 관룡사 석조여래좌상
그리고 관룡사에서 약 20분쯤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보물 제295호이다.
관룡사를 돌아본 후에는 명부전 옆 오솔길을 올라 용선대의 석가여래좌상을 보는 것이 좋다.
석가여래좌상의 생김새도 온화하고 빼어나지만 이 앞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아름답다.

 

 

 

석문(石門)
관룡사로 오르는 돌담길에는 축성시기를 알 수 없는 석문이 하나 있다.
사실상 관룡사의 일주문으로 불리는 이 문은 자연석 축대를 쌓아 올려 상부를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
화강석을 올려서 지붕을 올린 아담한 석문이다.
폭 118㎝, 높이 210㎝에 한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조그마한 문으로,
좌우로 관룡사 가람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조성시기는 17세기 명부전과 칠성각이 조성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관룡산의 진산인 화왕산 산성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사천왕문(四天王門)
관룡사 석문을 지나 사찰 초입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건물로
1712년(숙종 38)에 대웅전과 함께 건립된 것을 1978년 지금의 모습으로 신축하였다.
건물은 어칸 중앙의 양 측면에 기둥을 세워 대문을 달고,
어칸을 통해 출입문을 만든 모습으로, 내부에는 사천왕탱을 모신 감실형의 벽체가 남아 있다. 
벽체는 현재 비어 있으나 사적기의 내용을 통해 1713년 천왕문을 단청하면서
사천왕회상(四天王會像)을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양식은 3량가구에 외1출목을 둔 익공양식으로 살미첨차와 보머리는 수서형태로 장식하였으며,
주심도리에는 초각된 운공을 올렸다.
현재 절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며, 정면 어칸에는 ‘화왕산관룡사(火王山觀龍寺)’라는 편액 1기가 걸려 있다.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212호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 이 관룡사 대웅전엔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아미타여래 세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1965년 8월 보수공사 때, 천장 부근에서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이 건물은 조선 태종 1년(1401)에 짓고,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세워, 이듬해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가운데부분을 한층 높게 한 점이 특이하다.

 

 

 

 

 

 

 

원음각(圓音閣)
관룡사 대웅전 맞은편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건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0호이다.
상량문에 따르면 1634년(인조 12)에 초창된 후 1763년(영조 39)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초창 당시 극락전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현재 극락전은 현존하지 않는다.
이후 원음각은 1830년(순조 30)에 중수되었고, 최근 1994년 해체 보수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원래 사천왕문을 지나 사찰로 들어오는 누하식(樓下式) 건물이었으나,
현재 원음각 동쪽에 있는 계단을 통해 진입하도록 동선이 변경되어 있으며,
원음각 하부 역시 계단을 쌓아 옛 모습을 잃어 버렸다.
초석은 자연초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원형의 배흘림기둥을 사용하여 외부에 1ㆍ2층을 올리고
그 위로 팔작지붕을 올린 모습이다.

 

 

약사전(藥師殿) 보물제146호
약사전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매우 작은 불당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간결한 형태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 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순천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과 좋은 비교가 된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19호
고려시대에 만들어 약사전에 모셔진 불상이다.
머리 위의 둥근 육계(肉髻)에는 가르침을 상징하는 반달 구슬인
계주(髻株)를 표현하고 법의(法衣)의 겹쳐진 부분은 선각(線刻)으로만
표현해 형식화되어 가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랐다.
대좌(臺座)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연꽃잎을 거북 등처럼 새긴 상석대, 팔각형의 중대석,
연꽃잎을 두 겹 깐 사각형의 하대석으로 되어 있다.
불상의 크기에 비해 대좌를 높게 만들었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이 지역의 석공이 8세기의 신라 불상을 본보기로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팔각형의 중대석에는 조상기(造像記)가 4행 새겨져 있는데,
이를 보면 중대석이 772년(혜공왕 8)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서 현재 남아 있는 중대석과 불상의 조성 시기는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용선대(龍船臺)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95호
관룡산 (739.7m) 정상 부근의 수십길 낭떠러지 위에 홀로 앉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전체 높이는 1.17m이다.
높은 대좌 위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앉았는데 광배(光背)는 없어젔다.
머리에는 둥근 육계(肉髻)와 나발(螺髮)이 올려 졌고, 얼굴은 사각형이지만 둥근 맛이 있다.
조금 뜬 기다란 눈, 짧고 넓적한 코에 입가에는 미소를 띤 온화한 인상이다.
머리에 비해 어깨가 좁아 조금 위축된 듯 보이지만 안정감이 있다.
다리를 틀고 앉은 하체는 묵직해보여 안정감이 있고,
불상의 뒤까지 표현된 옷 주름은 규칙적이면서 평평하다.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으로 높게 구성된 대좌는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특징은 8세기의 불상에도 나타나지만 위축된 자세와 사실성이 줄어든 조각 수법 등으로 볼 때
8세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9세기 이후에 형식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남저수지의 연꽃  (0) 2014.08.01
부산항 인근 海上 나인 브릿지  (0) 2014.08.01
여름코스모스(청마들꽃)  (0) 2014.08.01
거제 산방산비원  (0) 2014.08.01
소매물도 (小每勿島)  (0) 201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