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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이야기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by 한 뫼 2017. 8. 5.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이곳은 오희도(吳希道, 1583~1623, 호는 명곡)의 넷째 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 호는 장계)이

부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글을 읽고 많은 저술을 남긴 별장터이다.


오희도(吳希道, 1583-1623). 자(字)는 득원(得原), 호(號)는 명곡(明谷)

160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합격하였다.

예문관(藝文館)의 관원으로 천거되었고, 기주관(記注官)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검열(檢閱)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망하였다.


오희도(吳希道)의 넷째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이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道藏谷)에 헌(軒)을 짓고 이를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 지었다.

오이정은 스스로 호(號를) 장계(藏溪)라 한바 장계정(藏溪亭)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나 정자가 퇴락함에 따라 후손 오대경(吳大經)이 다시 중수하였다.


명옥헌(鳴玉軒)은 정자 앞에 연못이 파여 있고 둘레에 적송(赤松) 및 자미나무 등이 심어져 뛰어난 조경으로 알려졌으며,

장계정(藏溪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또는 뒤편에 도장사(道藏祠)라는 사당에 있으므로, 도장정(道藏亭)이라고도 부른다.


명옥헌원림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차경(借景)으로 도입한 정사(亭舍)중심의 자연순응적인 전통정원양식이지만

전(前)과 후(後)의 조선시대 전통적인 ’방지중도형(方池中島形)’의 지당부(池塘部)를 도입하였다.

전(前)의 지당부는 명옥헌의 북쪽에 위치하며 그 고저차는 약 6.3m이다.

동서너비 약 20m, 남북길이 약 40m 크기를 갖는 방지의 중심부는 원형의 섬이 있으며 주위에 약 20주의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수령은 100여 년 정도이다.


명옥헌의 동쪽에 자리 잡은 지당(池塘)은 동서 16m, 남북 11m 크기이다.

이 지당은 1979년 여름에 조사 발굴된 것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계류의 물을 끌어 채운 것으로 북과 서쪽에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정자로 실의 구성은 외부로 툇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실을 둔 중앙실형(中央室形)이다.

방에는 구들을 두었고 평천장을 하였다. 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


명옥헌원림은 1980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9월 국가지정 명승(名勝)으로 지정되었다






















배롱나무꽃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고향이며,

고려 말 선비들의 문집인 《보한집》이나 《파한집》에 꽃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시집 오기 전의 중국 이름은 당나라 장안의 자미성에서 많이 심었기 때문에 ‘자미화(紫微花)’라고 했다.

글자로는 보라색 꽃이지만 붉은 꽃도 흔하고 흰 꽃도 가끔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자미화는 보라 꽃이 아닌 붉은 꽃이 먼저 들어오지 않았나 싶다.

이유는 자미화가 들어오고 나서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쓴 것으로 짐작되는

《양화소록(養花小錄)에 “사람들이 이름을 제대로 익히지 않아 자미화를 백일홍이라고 한다”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저자인 강희안도 붉은 꽃을 보았음을 알 수 있어서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하여 백일홍나무라 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배기롱나무로 변했다가 지금의 배롱나무가 된 것이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피는 특징 말고도 껍질의 유별남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오래된 줄기의 표면은 연한 붉은 기가 들어간 갈색이고,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얼룩무늬가 생겨 반질반질해 보인다.

이런 나무껍질의 모습을 보고 ‘파양수(怕瀁樹)’,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간지럼을 태우면 실제로 잎이 흔들려서 간지럼을 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일 따름이다. 식물에는 작은 자극을 일일이 전달해 줄 만한 발달된 신경세포가 아예 없다.

일본 사람들은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떨어질 만큼 미끄럽다고 하여 ‘원숭이 미끄럼 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배롱나무에는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남해안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는 해룡(海龍)이 파도를 일으켜 배를 뒤집어 버리는 심술을 막기 위해 매년 처녀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해마다 마을에서 가장 예쁘고 얌전한 처녀를 선발하여 곱게 화장을 시켜 바닷가 바위로 보내 해룡이 데려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침 왕자님이 마을에 나타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처녀 대신 바위에 앉아 있다가 용을 퇴치한다.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얼마 동안 머물던 왕자는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랑에는 마가 끼는 법, 왕자는 마침 출몰한 왜구를 퇴치하기 위하여 100일 뒤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마을을 떠나버린다.


매일 먼 바다를 바라보며 왕자를 기다리던 처녀는 그만 깊은 병이 들어 100일을 다 기다리지 못하고 죽고 만다.

약속한 날짜에 돌아온 왕자는 그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서울로 되돌아갔다.

이듬해 무덤 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더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왕자를 기다리듯 매일 조금씩 피는 꽃이 100일을 넘겨 이어지므로,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백일홍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도 배롱나무 옛터의 명성을 잃지 않는 곳이 여럿 있다.

소쇄원, 식영정 등 조선 문인들의 정자가 밀집해 있는 광주천의 옛 이름은 배롱나무 개울이라는 뜻의 자미탄(紫薇灘)이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담양 후산리 명옥헌에는 키 4~10여 미터, 줄기 둘레 30~150센티미터의 고목 100여 그루가 모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롱나무 숲을 만들고 있다.


그 외에도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경주 서출지 등도 배롱나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17. 8. 1

무더운 여름날 담양 후산리 명옥헌에서...

명옥헌의 아름다운 모습과 배롱나무꽃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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